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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밤과 후회의 낮 2018-05-14

 

어둠 속에서는 무슨 일이건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깁니다. 자유로이 밤거리를 누비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누워 빈둥대도 죄책감은 없지요. 모든 부끄러움과 후회는 밤의 몫이 아닌 낮의 몫일 테니까요.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나는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의 밤은 후회로 가득하다(I want to live my life so that my nights are full of regret)’라고 했던가요. 오늘 밤의 자유로움은 어쩌면 내일 낮의 후회가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 저명한 작가가 그리 말하니, 내가 오늘 이토록 후회하는 건 어제의 내가 삶을 잘 살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죠.   

 

 

 

 

_무쓸모한 것들로 밤을 지새운 밤

 

어떤 날은 일찍 잠드는 것이 엄청난 손해라도 되는 것처럼 도무지 잠들고 싶지가 않습니다. 멍하니 손가락을 위아래로 굴리며 SNS를 감상하고, 당장 결제할 것도 아니면서 사고 싶은 스타일의 옷을 스크랩하죠. 아무 의미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찾아 인터넷 서핑을 하고, 게임을 밤새 즐기기도 해요. 그러다 시계를 보면 어느새 4시. ‘아, 미쳤네’ 싶지만, 때는 이미 늦었죠.

 

_고칼로리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밤

 

문제는 내가 아니라 현대 문명이죠. 나는 분명 일찍이 잠을 자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TV에서 뜬금없이 먹방을 시작하질 않나, 휴대폰엔 왜 맛집 광고뿐인 건지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치느님의 허벅다리와 보글보글 라면 냄비 위로 솟아 오르는 김을 보면, 나의 체지방과 위의 건강에 대한 걱정은 하루쯤 뒤로 미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손가락은 머리보다도 빠르게 주문 앱을 누르고 말아요.

 

_이성과의 만남에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

 

모처럼 친구가 주선한 소개팅, 잘 해보자고 시작은 늘 의욕 만만입니다. 그런데 왜 언제나 소개팅 장소도, 소개팅 상대도, 내 컨디션조차 마음에 들지가 않는 건지요. 소개팅에서 성공한다는 건 흡사 로또에 맞는 일과도 같아 보여요. 혹은 헌팅의 현장에서.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괜찮은 이성들에게 유혹의 눈짓을 보내도 효과는 없고 허탕친 날이면, 돌아오는 길의 내 그림자는 어쩌면 그리도 애처로운지요.

 

_ ‘한 잔만 더~’를 외치며 끝까지 가는 나

 

왜, 도대체 술만 마시면 인격이 180도 변하는 걸까요? 간밤의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 채 멍한 머리로 출근을 하면 꼭 어제의 막장 릴레이 술자리의 주범으로 지목을 당합니다. 깨지 않는 숙취보다 더 씁쓸한 건, ‘외로워서 그래’라고 쑥덕거리는 동료들의 뒷담화죠.

 

_밤새 나를 괴롭히는 숙취

 

1차가 끝난 직후부터 ‘2차~3차~~!!’를 외치며 술자리를 주도하고 돌아온 날, 씻지도 않고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든 날. 예로부터 좋은 자리, 사람들,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시면 취하지 않는 법이라고 했거늘. 어떤 날은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맙니다. 변기와 한 몸이 되어 사색이 된 얼굴을 보면, 간밤의 폭주를 후회하는데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죠.   

 

_새벽 두 시, 그 사람 생각

 

‘새벽 두 시 감성’이라는 말은 대체 누가 지어냈을까요? 적당히 취해 어두운 밤거리를 헤치고 집으로 돌아온 새벽 두 시, 불현듯 얼마 전 헤어졌던(혹은 가장 최근에 헤어진) 그 사람이 떠오릅니다. 밤바람이 유난히 차가워서, 친구가 연애를 시작해서, 혹은 얼마 전 소개받은 사람이 그에 비해 영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공연히 떠오른 그 얼굴을 휘휘 저어보다가,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고 그 사람의 SNS 계정을 염탐하고 맙니다.

 

_그러다가 연락해버린 최악의 밤

 

그리고 가장 최악의 상황은, 가장 후회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향해 후회하게 되었을 때죠. 새벽 두 시의 중2병 돋는 감성으로 어젯밤 저질러선 안될 일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단지 오늘 낮 반나절 분의 후회는 아닐 거예요. 시작은 문자로 가볍게 스타트, 5초 간격으로 답변을 확인하다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네요. 후회는 [부재중 1통]이 찍혔을 그 휴대폰을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지막 바람이라면 취소조차 할 수 없는 간밤의 내 그리움을 그가 제발 모른 척했으면 하는 것뿐이죠.